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봉준호 감독이 ‘트로피 와 함께 들어 올린 것은

                  
윤성은 영화평론가
      윤성은 영화평론가

지난 달 9일 저녁(LA 현지시각), 미국 돌비극장에서는 보고도 믿기 어려운 장면이 펼쳐졌다.

전 세계 영화인들과 관객들의 이목이 집중된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2019년)이 작품상, 감독상, 각본상 등 주요부문을 포함한 네 개의 상을 휩쓴 것이다.

아카데미 92년 역사상 처음으로 최종후보에 오른 한국영화가 곧장 최고상까지 수상했다는 점은 올해로 101년을 맞은 우리 영화계의 경사였다.

게다가 그것이 외국어 영화로서는 전례가 없던 일이라는 점은 비영어권 국가에서 영화를 만드는 모든 사람들까지 감동시켰다.

또한 봉 감독은 아카데미의 역사를 바꾸어놓았을 뿐 아니라 한 작품으로 칸영화제 황금종려상과 아카데미 작품상을 석권한 두 번째 감독이 되었다.

주지해야 할 사실은 봉 감독이 <기생충> 한 편으로 스타가 된 것이 아니라 초기작부터 주목 받아온 감독이라는 것이다.

장편데뷔작 <플란다스의 개>(2000년)는 대중들에게는 외면당했지만 평단의 호응을 얻는데 성공했고, 두 번째 작품인 <살인의 추억>(2003년)은 국내를 넘어 해외에서도 명작으로 인정받으며 봉준호라는 이름을 알리는 계기를 마련했다.

이후 그의 신작은 예외 없이 전 세계 시네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봉준호 감독이 지난 달 20일 청와대에서 문재인 대통령의 영화 <기생충> 제작진, 배우 초청 오찬에 앞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사진=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봉준호 감독이 지난 달 20일 청와대에서 문재인 대통령의 영화 <기생충> 제작진, 배우 초청 오찬에 앞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그러나 2000년대 초반 한국영화의 성장은 봉준호 혼자 이끌어낸 것은 아니다.

여러 감독들이 앞 다투어 수작을 내놓으며 국제영화제에 초청되기도 하고, 해외 시장으로 진출하면서 한국영화는 서서히 존재감을 드러냈다.

한국영화사에서 기념비적인 해로 꼽히는 2003년에는 <지구를 지켜라>(장준환), <올드보이>(박찬욱), <살인의 추억>(봉준호), <장화, 홍련>(김지운), <태극기 휘날리며>(강제규) 등이 제작되었거나 개봉했다.

이 시기에는 다양한 장르의 작품들이 감독들의 개성을 따라 만들어졌고, 미학적으로 훌륭했을 뿐 아니라 오락적 가치도 충분해 대부분은 대중들에게도 환영을 받았다.

문제는 (아이러니하게도)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네 번이나 한국어 소감을 들을 수 있었던 2020년이다. 과연 봉 감독이 들어 올린 오스카 트로피에 한국영화의 미래도 함께 있는가? 그리고 2003년의 극장가 풍경은 다시 재현될 수 있을까?

2020년 2월, 영화진흥위원회가 발간한 ‘2018년 한국영화 수익성 분석’에 따르면, 이 해에 개봉한 (순제작비 30억 이상) 한국 상업영화 40편의 수익률은 -4.77%로, 총 195억 5000만원 규모의 손실이 발생했다.

이는 2011년 이후 7년만의 적자 수익률이다.

2019년 개봉한 (순제작비 40억 이상)한국 상업영화 45편에 대한 (추정)수익률은 5.9%로 상향되었으나, 2018년 이전의 수준(2017년 18.03%, 2016년 29.76%)을 회복하지는 못했다.

또한, 수익률 -50% 하회비율은 2018년도보다 10% 이상 증가했고, -80% 하회 비율은 2018년(5.0%)의 네 배가 넘는 22.2%에 달한다.

그만큼 지난해는 대작으로의 쏠림현상이 극심했던 한 해였는데, 이는 블록버스터 개봉시마다 불거지는 스크린독과점 논란과 직결된 문제다.

게다가 2019년 한국영화 해외 매출 총액은 전년 대비 8.2%나 하락했다. 중국의 한한령 및 홍콩시위 등의 영향이 컸던 것으로 분석되나 일시적인 현상이라고만은 할 수 없을 것이다.

이처럼 한국영화산업의 객관적 지표에는 사실상 먹구름이 짙게 끼어 있다.

뿐만 아니라 이창동, 김지운, 박찬욱, 봉준호 등을 이을 만한 역량 있는 다음 세대의 감독들이 눈에 띄지 않는다는 점은 영화계에 위기감을 조성하고 있다. 이른바 ‘포스트 봉준호’들로 이어지지 않는다면 한국영화에 대한 작금의 세계적 관심, 즉 아카데미 특수는 금방 사라질 수밖에 없다.

 

지난해 국내외에서 수십개의 상을 받으며 ‘독립영화계 기생충’으로 불린 <벌새>의 김보라 감독은 이미 2011년 단편 <리코더 시험>으로 아카데미협회에 못지않은 권위를 인정받는 미국 영화감독조합(DGA)이 시상하는 제17회 ‘DGA 학생영화상’에서도 수상했다. (사진=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지난해 국내외에서 수십개의 상을 받으며 ‘독립영화계 기생충’으로 불린 <벌새>의 김보라 감독은 이미 2011년 단편 <리코더 시험>으로 아카데미협회에 못지않은 권위를 인정받는 미국 영화감독조합(DGA)이 시상하는 제17회 ‘DGA 학생영화상’에서도 수상했다.


최근 한국영화의 지속적 성장을 위해서는 영화 및 비디오물의 진흥에 관한 법률(이하 ‘영비법’)이 개정되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면서, 영화인들을 중심으로 ‘영화산업 구조개선 법제화 준비모임’이 결성되었다.

이 모임이 발표한 ‘영화산업 구조개선 요구 영화인 선언’(이하 ‘선언서’)은 ▲대기업의 영화 배급업과 상영업 겸업 제한 ▲스크린 독과점 금지 ▲독립·예술영화 및 전용관 지원 제도화 등을 촉구하고 있다.

이는 한국영화계의 고질적 병폐를 청산하고, 관객들의 다양한 욕구를 충족시키며, 영화산업에 건강한 생태계를 조성하기 위해 반드시 수술대에 올라야 할 부분들이다.

특히 선언서에서 제기한 내용 중에서 ‘대기업의 수직계열화’나 ‘스크린 독과점’보다 대중들에게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독립·예술영화에 대한 지원책은 한 번 더 강조하고 싶다.

<기생충>과 함께 2019년 우리영화계를 풍요롭게 만들어준 작품은 지구 한 바퀴를 돌면서 유수의 영화제를 통해 극찬을 받았던 순제작비 3억 원대의 <벌새>(김보라 감독)였다.

또한 <메기>(이옥섭 감독), <아워바디>(한가람 감독) 등도 개성 있는 스타일과 동시대 청춘들에 대한 적확한 묘사로 주목 받았던 독립영화들이다.

자본의 압력을 받지 않고 보다 창조적인 작업이 가능하며, 사회에 대한 문제의식을 직접적으로 드러낼 수 있는 독립·예술영화에 대한 제도적 지원은 신인감독 발굴 및 문화적 다양성을 위해 꼭 필요하다.

이제는 반드시 한국영화계에 변곡점을 찍어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되면서 이 선언서에는 지난 달 17일부터 25일 정오까지 9일 동안 1325명의 영화관계자들이 서명했다.

한국영화계는 영비법 개정 뿐 아니라 변화해가는 미디어 환경에 적응할 태세를 갖추어야 한다. 그리고 매해 꾸준히 증가하고 있는 영화의 디지털 온라인 시장, OTT 서비스 회사들의 오리지널 콘텐츠 제작 및 경쟁체제는 이미 영화계에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우리 영화계는 신기술을 활용한 새로운 제작, 배급, 상영 방식을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새로운 극장 환경 조성 및 다양한 공간 활용 등을 고민할 필요가 있다. 모두 지체할 시간이 없는 사안들이다.

이런 즉, 봉준호 감독이 오스카 트로피와 함께 들어 올린 것은 한국영화의 밝은 미래가 아니라 그 명예만큼 ‘무거운 과제들’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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